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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상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4.27 나는 "진짜 사나이"가 불편하다 (227)
  2. 2012.12.08 족보있는 부대 소개 - 백마부대 (6)

최근 각종 예능에서 부진을 겪던 MBC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훈련소 체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니, 정말 마음이 불편하다. 


1. 탄피 분실 


경악이다. 탄피가 사라졌단다. 

진짜사나이 샘해밍턴, 탄피분실에 " 난 정말 재수가 없다. " 한숨


어린 시절 람보를 보면서 군대를 동경했다는 호주 출신의 샘 해밍턴이 사격 중에 탄피를 분실하여 이를 찾는 소동을 벌였다. 

진짜사나이 시청률 껑충, 샘 해밍턴 탄피 분실 “완전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왜 이 탄피 분실에서 불편함을 느껴야 했을까. 

먼저, 만화가 곽백수의 걸작 "트라우마"를 통해서 보자.

(스포츠서울, 오유)

사격 후에 탄피 줍는 군대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쓰레기 재활용 차원에서 탄피 줍는 경우 외에 "사격한 실탄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서 탄피를 줍는 경우 말이다. 물론 탄피 확인은 실탄 소모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있지만 행여나 실탄을 숨길지 모른다는 "의심"도 포함이 되어 있다. 


(영화평)

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서 초반 사격장에서 영점 맞출때, 탄피 튀는 방향 관계없이 사격을 해 댄다. 그리고 그들이 탄피를 주워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국군에서 복무한 사람이라면 "탄피 줍는 것"이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의문을 가져 보자. 그게 왜 "당연한 걸까"? 방송 프로그램에서 중대장이 한 말이 과연 합당한 이유일까? 그리고 외국인 데려다가 탄피로 인해 얼얼하게 만드는게 과연 즐겁게 봐야 할 일일까. 


2. 군데리아 


	군대리아를 먹고 있는 출연진들/방송 영상 캡처

'진짜사나이' 군대리아 특식 제공, 탄피 사라져 지뢰탐지기까지…"완전 군대야"


씁쓸하다. 군대 급식 중에서 "똥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보기도 참 부끄러운 된장국이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아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햄버거 즉 "군데리아"다. (사실 왜 1주일에 두번이나 저렇게 빵과 우유를 급식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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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급식 : 가생이 닷컴에서)


위의 우리 급식과 비교가 되는가? 이것이 미군의 급식이다. 물론,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국과 비교한다는 건 좀 그렇다. 그래도 어설픈 "군데리아"보다 낫지 않은가. 


그리고 저 군데리아 급식은 (군데스리가와 함께)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저런 급식을 먹고 "체험"한다고 좋아라 웃지 말자. 대한민국의 빽없고 돈 없는 건장한 남자들은 이미 2년 넘게(요새는 2년 안되게) 아주 "빡빡"하게 체험하고 오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전역하면 끝일까. 그렇지 아니하다. 군대는 필요하다. 없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개선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자식들도 저런 식으로 군데리아를 먹고 탄피 숫자에 벌벌 떨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력이 올라가고 국력이 높아졌다 해도 결국 아직 "그대로"인 곳이 바로 군대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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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대표 이대표님

12월 초, 폭설이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으니, 이 하얀 눈에 걸맞는 부대를 하나 소개한다. 눈처럼 하얀 색깔을 가진 말, 이름하여 "백마". 그 이름을 가진 부대가 있으니 "백마부대" 제9 보병사단이다. 


출처 : 행복한 파주


족보있는 부대들이 어디 허접한 역사를 가졌을까마는, 이 부대도 쟁쟁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사단은 1950년 10월 한국전쟁 중에 서울에서 창설되었다. 이 부대가 "백마부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52년 당시 철원 지역에서 제9 보병사단과 중공군 간에 벌어진 접전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접전 지역이 포탄으로 인해 산 자체가 완전히 하얗게 변해 그 모습이 백마가 누운 모습과 같다하여 백마고지라 불렀는데, 제9 보병사단은 그 승리의 전리품으로 "백마부대"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파일:Battle of White Horse jeonseoungbi.jpg


- 백마고지 전적비 (위키백과 )

당시 이 전투를 지휘했던 김종오 장군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인 6월과 7월에 제6 보병사단을 이끌고 춘천과 음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명장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백마부대는 육군 중에서 사단급으로는 유일하게 월남에 갔다온 부대이다. 


간단한 부대 역사를 보자. 


 6·25 전쟁기(1950.6.25~1954.7.14) 
사단은 6ㆍ25 전쟁 초기인 1950년 10월 25일 서울 청계초등학교에서 창설되어 조국보위의 명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설 후 대둔산 지구에서 전투 사령부를 설치, 지리산지구 공비토벌 작전을 전개하여 적 사살 2,000여명, 포로 250여명의 전과를 세웠으며,

1951년 멸공작전의 선봉부대로서 6ㆍ25 전투에 참가, 수회의 작전을 완벽한 승리로 이끄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6ㆍ25 전사상 산악전투의 대표적 승전보인 매봉ㆍ한석산 전투는 사단 예하 독수리부대가 인민군에 맞서 혈전 끝에 고지를 탈환한 전투로서, 전투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독수리부대 3대대전 부사관과 병사들에게는 1계급 특진의 영예가 주어졌으며, 지금도 매년 전승일을 맞아 전몰장병 추도식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중공군 3개 사단과 정면으로 대결, 피아 포격으로 인해 고지 높이가 1미터나 낮아지는 치열한 대접전 끝에 적사살 13,000여명의 전과를 올린 백마고지 전투는 창군 이래 최대의 무공을 기록한 전투로서, 우리 국군의 불퇴전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알려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서 '상승백마'의 명예로운 칭호를 하사하셨습니다. 

1953년 휴전을 앞두고 북한군은 중공군을 앞세워 대공세를 취해왔으나, 백마부대는 당시 작전 지역인 금화지역의 모든 진지를 고수함으로써, 다시 한 번 사단의 전투력을 과시하였습니다.
포연에 휩싸인 백마고지
 
 중ㆍ동부지역 방어기(1954.7.15~1966.3.17)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 후 사단은 인제, 화천, 양평 등 각지에서 중ㆍ동부지역 방어임무 및 교육훈련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1956년 하사관 교육대 창설, 966포병대대 예속, 보충교육대 창설 등 전투력 증강에 전력 질주하였고, 각종 야외기동훈련, 연대 전투지휘훈련, 사단 자유기동연습 실시 등 지속적인 전투준비태세 훈련을 통하여 조국수호의 선봉으로서 그 모습을 다져갔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기(1966.3.18~1973.9.22) 
백마부대는 1966년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평화의 십자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습니다. 주월 한국군 최초의 군단급 작전인 오작교 작전에서 백마부대는 정예 보병 3개대대를 투입하여 42일간의 작전 끝에 적사살 925명, 포로 425명, 귀순 297명, 각종화기 711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는 대승리를 거두어 중부 월남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습니다.

홍길동 작전에서는 월맹군 5사단 예하 95연대와 베트콩 85연대 및 게릴라 2개 중대를 신출귀몰하는 홍길동처럼 불시에 적을 급습, 기세를 제압한 후 적을 완전히 섬멸하였으며, 73년 귀국전까지 대부대작전 500여회, 소부대전투 2만여회를 실시하여 적사살 13,500명, 포로 700여명, 귀순 800여명, 각종 화기 7,000여점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올렸습니다. 

아울러 85,000여회의 친선활동과 도로, 교량, 공공시설 건설 등의 복구 사업을 실시하여 한국군의 용맹성과 평화애호 정신을 세계만방에 과시했습니다.
 
 서부지역 방어기(1973.9.23~현재)
1973년 해외파병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개선하여 전투 경험이 가장 많은 사단답게 가장 중요한 수도 서울의 서북방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3월 23일에는 야음을 틈타 한강하구로 침투한 무장공비 3명을 전원 섬멸함으로써, 창군 이래 최초의 대침투작전의 완전작전 선례를 남겨 한강 결사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1998년, 1999년도에는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경기 북부지역 수해복구 활동을 펼쳐 수재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붇돋아 주었으며 ‘86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경계지원 및 전세계인의 축제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전야제 및 개막식 행사 지원 등으로 대한민국의 명성을 세계속에 드높였습니다. 

현재 백마부대는 국민의 군대로서 ‘적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최정예 전투사단 육성’이라는 지휘목표아래 전 장병이 일치단결하여 최강의 전투사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예하부대소개
도깨비부대
금화지구 전투에서 신출
귀몰하게 적을 섬멸한 
도깨비부대
황금박쥐부대
6ㆍ25 야간전투에서 
탁월한 전과를 발휘한
황금박쥐부대
독수리부대
매봉ㆍ한석산 전투에서 
불굴의 투혼으로 적을 
섬멸한 독수리부대
백호부대
강력한 화력으로 신속,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하는
백호 부대
 





백마부대는 연예인이 많이 갔다.  2012년에는 이특이 입대를 했다.

 - 스타뉴스 이특 입대 기사 "'현역' 이특, 9사단 백마부대 신병교육대 배치"


그 이전에는 안정환도 훈련소를 저 백마부대로 갔다왔다. 


 - 동아일보 디지털스토리 "안정환 백마부대 입소… 4주훈련후 유럽행 가닥"


그런데 찾아 보니 이런 분도 계시네.


 - JMS "나만이 걸어온 그 길"


백마부대는 전역 후에도 "백마전우회"를 결성하여 만남을 이어가고 있단다.  그리고 백마상회에서는 고무신과 부모님들이 백마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줄 만한 선물을 팔고 있다.  http://9sadan.7-st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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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대표 이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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