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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4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본 명량과 이순신 (1)


2014년, 대한민국은 "이순신"과 "명량"으로 떠들썩하다.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서 한 장수가 능력을 발휘하여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올해 개봉된 두 영화를 바탕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위대한 장군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한번 보자. 


살펴 볼 영화는 아래와 같다.

명량 Roaring Currents , 2014 

요약 한국 | 액션, 드라마 | 2014.07.30 | 15세이상관람가 | 128분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홈페이지 www.12vs330.co.kr

300 : 제국의 부활 300: Rise of an Empire , 2014

요약 미국 | 액션, 드라마 | 2014.03.06 | 청소년관람불가 | 102분

감독 노암 머로

출연 에바 그린, 설리반 스태플턴, 로드리고 산토로, 레나 헤디 

홈페이지 www.300roae.co.kr


1. 배경 : 페르시아전쟁과 조일전쟁(임진왜란)

페르시아전쟁

먼저 그리스를 보자. 지금의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페르시아는 그 후손이 현재의 "이란"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499년부터 기원전 450년까지 약 50여 년 동안 그리스 지역을 침공하면서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일으켰는데, 크게 3번에 걸쳐 전쟁을 하였으며 이를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참조)


페르시아전쟁은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서 "괴상한 페르시아인들이 문명국 그리스를 침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페르시아 지역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하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가 지속적으로 진압을 하면서 확대가 되었다. 처음에는 위 지도에서 보듯이 "이오니아(Ionia)" 지역의 반란이었는데, 그리스 본토의 도시국가들이 도와주면서 페르시아가 점차 서쪽으로 전선을 확대해 간 과정이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스파르타 군인들을 보여주는데, 식민지 확대와 반란 지원에 뿔이 난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침공해 들어간 상황인지라 스파르타 군인들이 엄밀히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1차 페르시아전쟁은 마라톤 평원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에 패해 다리우스가 병력을 철수하면서 끝났다. (이때 한 병사가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뛰어 가서 승전 소식을 전했고 그게 지금 마라톤 경기의 시초가 되었단다.)

2차 페르시아전쟁은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유명한데, 다리우스 1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무려 10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을 하였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더스 왕이 전사한 후에 크세르크세스가 육로와 바다로 계속 진군하여 아테네와 스파르타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하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여 후퇴를 하였다. 


조일전쟁(임진왜란)

1592년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이 "정명가도"라면서 조선을 침공했다. 



(줌)

예전에 우리는 하도 피해의식에 쩔어서 임진왜란 하면 조선군이 육군이나 수군 할 것없이 도망가기 바빴다고 알고 있는데 위 지도를 보면 실제로 그러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 준비가 안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초반에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개전 6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전쟁지도부가 먼저 퇴각을 하였으니 대응할 수 있는 군대가 무너졌지만 흩어진 관병들이 의병과 함께 지역전을 펼치면서 왜군의 보급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따라서 임진년 당시에는 파죽지세로 올라갔지만 그 후에는 오히려 경상도 지역에 고립되어 지구전을 펼친 것이다. 정유재란때는 그나마 진출하지 못했던 전라도 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그래서 지금도 순천에는 "왜성"이 남아 있다.) 바다로는 전라도 남쪽 바다까지 진출하였다.

육전과 수전을 병행하여 수륙병진을 하려던 전략이 이순신 장군에 의해 분쇄가 되고 또 한반도의 추위를 견디지 못해 대다수 참전 왜군은 불귀 객이 되었다. 물론 전쟁터를 제공한 조선이 가장 피해가 컸지만 일본 역시도 이 전쟁 이후 피폐해져서 정권 교체 명분이 된 건 사실. 



너무 길어져서 나눠서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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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대표 이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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